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(문단 편집) === 대외 관계 === 응게마는 공산권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였는데, [[쿠바]]와 [[북한]]은 응게마에게 군인과 경호원을 제공했으며, [[소련]]은 무기와 대통령 전용기, 차량 등을 지원했고, [[마오쩌둥]]이 죽었을 당시에 응게마는 공개적으로 울었으며, 중국산 쌀이 너무 많이 수입된다는 불평을 한 국민을 '중국과 수입 협정을 맺기 위한 대통령의 노력을 모욕했다'고 몰아 구금하기도 했다. 특히 [[북한]]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, [[김일성]]을 존경하며 김일성을 '형님'이라고 부르고 서로 친구로 지냈다. 또한 그는 한반도 통일[* 물론 응게마의 성향을 보면 사실상 북한 주도의 [[적화통일]]을 지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.]과 [[하나의 중국]] 개념을 지지했다고 한다. 그리고 응게마는 '반식민주의'라는 명목으로 사실상의 백인 식민지 국가였던 [[남아프리카 공화국]], [[나미비아]], [[로디지아]][* 응게마의 몰락 1년 후인 1980년에 독립하여 [[짐바브웨]]가 된다.] 지역의 흑인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며 아프리카의 흑인 지도자들을 '나의 형제'라고 부를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,[* 이는 어찌 보면 자신이 스페인에 부역하던 과거에 대한 콤플렉스와 무관하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.] [[팔레스타인]]과 [[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]]도 우호적으로 보았다. 그러나 [[프랑스]]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는데, 응게마는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의 관계는 끊어도 프랑스와의 관계는 끊지 않으면서 프랑스에 전기, 공공 공사 및 항공 분야를 돕게 했다. 그는 프랑스와 [[영국]]은 스페인과 달리 아프리카에서 괜찮은 식민지 정책을 수행했다고 생각했다. 그리고 프랑스는 사실 다른 아프리카의 식민지 출신 국가들처럼 적도 기니를 자신들의 세력권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